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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흔적을 남겼다

콩가루 집안의 왕자님은 모든 것이 서툰, 일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by 쿠선생 2021.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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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 모든 일은 그 결과가 벌어지기 전에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일을 못하게 된 건 어찌 보면 안정된 가정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지 못하고, 언제 주양육자가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서 자랐기 때문은 아닐까?

  1.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난 귀하디 귀한 왕자님
  2. 아빠의 종합예술, 캠핑
  3. 캠핑에서도 발현되는 일 못하는 아빠

1.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난 귀하디 귀한 왕자님

  • 흘러넘치는 이혼의 유전자
  • 왕자님 납셨네

흘러넘치는 이혼의 유전자

할머니는 사남매를 낳았다. 그중 막내인 셋째 고모는 이혼했다. 맏이인 첫째 고모는 이혼하고 재혼하고 또 이혼했다. 아버지는 이혼하고 형식상 재혼은 했지만 법률상 사실혼으로 산다. 물론 그다지 화목하지 않다. 둘째 고모는 결혼을 안 했다. 둘째 고모는 그래서 이런 집안의 꼬락서니를 보고 '빌어먹을 콩가루 집안'이라 했다. 이 세상에 이혼의 유전자가 있다면 그 유전자가 나에게 있을 확률은 꽤나 높았다. 또한 이혼이라는 것이 어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학습의 결과물이라면, 할머니가 나의 엄마를 욕하며, 그런 엄마가 아빠의 흉을 보며 고모가 고모부의 인성과 집안에 대해 품평을 하고, 자신만이 억울하고 피해를 보았으며 세상 모든 것에 탓을 하는 상황 속에서 꾸준하게 이혼을 선행 학습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라는 사람은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이혼이라는 것을 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의 소유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왕자님 납셨네

할아버지는 이북사람이었다. 6.25이후 쭉 남한에서 살게 된 경우로, 할아버지의 형제자매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 또한 아들이 귀한 집에 아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슬하에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었고, 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신 상태에서 아들이라는 존재는 아들 그 이상의 무언가 였고, 그 무언가는 다시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우리 가문의 2대 독자는 태어났고, 할머니는 그 어린것에게 세상에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리라 다짐했다. 큰고모가 사촌 누나를 낳았을 때 할머니는 찾아가 보지도 않았다.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인 막내 고모의 아들이 나와 밥을 같이 먹을 때면 할머니는 슬며시 고기반찬을 내쪽으로 밀었다. 할머니에게 나라는 손주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염둥이였고, 편애는 질투를 낳았다. 나에게 주어진 편애와 특권이 싫진 않았지만 그저 좋지만도 않았다. 우리 가족은 화목하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혼의 되물림을 받기 싫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받고 싶지 않아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마치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운명처럼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에는 나 또한 이혼해 있을 것 같은 느낌에 괴로웠다.

2. 아빠의 종합예술, 캠핑

  • 콩가루 집안 왕자님은 공주와 만나 행복하게 살 고 싶다.
  • 좋은 아빠, 괜찮은 남편은 캠핑장에 모여있다.

콩가루 집안 왕자님은 공주와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다가 공주님을 만났다. 7년간 연애하며 왕자는 공주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겼다. 왕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공주를 붙잡지 않았다. 빌어먹을 콩가루 집안의 유전자는 왕자에게 공주가 왕자를 떠나더라도, 붙잡지 않을 쿨함을 보이도록 강요했다. 왕자는 떠나겠다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것이 진정한 매너이자 미덕이라 생각했다. 공주는 왕자가 자신을 붙잡아주길 원했다. 공주는 확신이 필요했고, 왕자는 그것을 주지 못했다. 그래도 공주는 왕자를 떠나지 않았다. 왕자는 그런 공주에게 붙잡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늉 끝에 둘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연년생 아이 둘을 낳고 산다. 가정적인 남편이란 무엇인가. 좋은 아빠란 무엇인가. 화목한 가정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좋은 아빠, 괜찮은 남편은 캠핑장에 모여있다.

깊은 고민의 결과, 좋은 아빠, 괜찮은 남편의 키포인트가 되는 지점을 알게 된다. 바로 캠핑장이다. 참된 아빠의 길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가정적인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아빠들은 거의 대부분 캠핑장에서 자신의 멋진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아빠가 캠핑장에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
아빠는 캠핑장에서 엄마가 하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한다. 캠핑장에서 엄마는 애들을 돌본다. 그리고 아삐는 엄마가 아이들을 케어하는 동안 간이 의자 및 해먹을 설치해 아기 엄마가 편하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그 사이에 텐트를 설치하며 불을 피우고 식사 준비를 한다. 식사를 끝마치면 애엄마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설거지를 하고 애들을 깨끗이 씻긴 후 일찍 재우고 육아 파트너와 불멍을 때리며 티타임을 갖는다. 이것이 프로 아빠의 세계이며, 감히 아빠를 위한 종합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캠핑이다.

3. 캠핑에서도 발현되는 일 못하는 아빠

콩가루 집안의 왕자님은 당연하게도 캠핑을 해본 적이 없다. 캠핑 장비에서부터 세팅까지 하나하나가 어설프기 그지없다. 아이들의 칭얼거림과 그 아이들을 케어하는 아내의 힘겨움에 점차 후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캠핑이 이런 건지 몰랐다. 나도 아빠와 이렇게 함께한 적이 있었다면 이렇게 서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는 말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며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나는 왜저렇게 하지 못하는가. 책임감이 나를 짓누른다. 직장 내에서도 일을 못하는 나는 가정 내에서도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캠핑장을 예약하고 캠핑을 할 때마다 아빠로서의 부담감이 나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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