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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흔적을 남겼다

인싸선생은 일진을 방치했고 나는 그래서 그들의 꼬붕이 되기로 했다.

by 쿠선생 2021. 12. 3.

너는 도대체 왜그러니? 다들 너랑 근무하기 싫다고 이야기해. 도대체 문제가 뭐야?

기댈 곳이 없었다. 부서장은 나를 싫어했다. 나를 문제아라고 여겼다. 나만 없으면 부서는 괜찮았다. 그래도 잘 돌아갔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신입들이 그래도 잘 버텨주었다. 이제 나만 자리를 잡으면 되는데 그게 안됐다. 있는 물건을 고쳐쓸 때 비용이 새로운 제품을 살 때의 비용과 별 차이가 없다면 당연히 새로운 제품을 사는 게 낫다. 이 바닥이 그랬다. 빌빌대는 나같은 간호사 하나를 시간을 들이며 기약없는 기다림에 지쳐갈 바에야, 어떤 인간이 들어올지 모르더라도 신입을 받는 것이 나을 것같다고 부서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너 혹시 불안장애 아니니? 괜찮으니까 한번 정신과 상담한번 받아봐. 요즘엔 그게 흠도 아니라더라. 그렇게 일하는데 불안해서야 되겠니?" 부서장은 이야기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나가라는 이야기였다. '너는 이제 내 부서원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가 관리할 게 아니라. 정신과 의사가 관리할 인간인 것같애.'라고 이야기 하는 것같았다.

나는 그저 샌드백이었다.

사내녀석들사이엔 분명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나는 그 중에 최하위그룹에 속해있었다. 나는 싸움이 싫었다. 자신이 없었다. 보나마나 질 것같았다. 이기고 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고 쓰러질 운명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했다. 그래서 싸우지 않았다. "야. 주상희 나와 운동하자." MMA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 녀석은 나를 데리고 교실 뒷편에서 스파링을 했다. 체급은 나와 비슷했다. 내가 조금더 키가 컸는데, 나는 그저 일방적으로 맞았다. 나는 만만했다. 나는 레슬링 기술을 나에게 퍼붓는 그 자식이 싫었다. 뭔가 나를 작정하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그녀석 나름대로의 친한척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어찌됐건 밖에서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 나는 그녀석의 꼬봉이었다. 그게 중요했다. 나는 그녀석의 꼬붕이었고 샌드백이었다. 어찌보면 나만의 피해망상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나는 진정한 친구였을까.

등하교 메이트가 생겼다.

나는 등하교를 자전거를 타고 했다.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같은 반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나를 알아봤고 같은 반이라는 것을 안 후로 방과후에 자전거를 타고 같이 집에 가기 원했다. 자전거라는 것이 걷는 것과는 달라서 이야기 하면서 탈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굳이나 자전거를 타고 집가는 길을 함께 하기 원했다. 그 아이는 최대한 내가 그 아이에게 맞춰 그 아이 집쪽까지 간 후에 나와 헤어지기 원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집을 돌아가는 꼴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싫었고 한동안은 그 아이를 피해 집으로 갔다. 하지만 얼마 못가 잡혔고 나는 그렇게 그 아이와 3년을 같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하교를 같이 했다. 그 아이는 독특했고 나름의 교실 내 입지가 있었다. 나는 스파링을 좋아하는 아이의 꼬붕이기도 했지만 자전거 하교 같이 하는 아이의 꼬붕이기도 했다. 어느날은 나를 데리고 다른 고등학교로 원정축구를 갔다. 나는 축구를 못하기에 계단에 앉아 그 아이 축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아이는 나에게 아이팟을 줬고, 나는 찐따처럼 그 아이를 기다리며 그 아이가 들으라고 나에게 건낸 락음악을 계속들었다. '쟤는 뭔데 축구도 안하고 저러고 있어? 쟤? 몰라 덕창이 꼬붕이래.' 나를 바라보며 수군대는 것같았다.

인싸선생님은 국사선생님

"북한이 38선을 넘어 부산까지 진격하는데, 일주일이 채 안걸렸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저항이 없었다는 거야. 그냥 쭉쭉 밀고 들어왔다는 거지. 왜그럴까? 우리 배웠지 남한은 친일파 처단을 안하고 있었다고. 근데 북한군이 부산까지 내려오면서 하는 일이 뭐냐. 이 친일파를 색출하고 처단하는 일이었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거지. 그래서 일주일만에 그렇게 진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거든." 나는 국사선생님이 좋았다. 강의를 재밌게 하는 것도 좋았고 사회비판적인 시선이 멋있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나를 매료시켰고, 그라면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줄 것이라 믿었다. "얘들아, 이제 오렌지주스라고 하면 안돼. 어륀지, 어륀지라 해야돼. 알겠지? 그렇게 교육해야된대. 우리나라 교육이 이렇게 된건 공부만을 강요한 이 사회가 만들어낸거야. 우리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사회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일 줄도 알아야돼." 이명박 대통령이 통치하고 한나라당이 실권을 장악한 이때에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준다면 당연히 나를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주리라. 그래서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내 예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걸 왜 나한테... 너 우리반 아니잖아. 그런건 담임선생님하고 이야기를 해야지. 너 정선생님반이지? 정선생님! 이 학생 좀 봐주세요. 얘야, 그런건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 하는거야." 그리고 곧 담임선생님이 찾아왔다. "너는 그걸 왜 다른 사람한테 가서 말하니? 나랑 이야기하기 싫어? 불편해? 이건 나른 무시하는 거야. 내가 쪽팔려지는 거라고. 일단 알겠으니까 나가봐. 이런건 담임한테 이야기 해야되는거야. 알겠어?"
괜히 얘기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야, 주상희 이 새끼가 담임한테 우리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그랬대. 어이없지 않냐? 진짜 괴롭히는게 뭔지 보여줘? 학교생활 진짜 편하지? 놀아줬더니 이새끼가 이렇게 뒷통수를 칠 줄은 몰랐네. 난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됐다. 이제 아니다. 너 나 이제 아는척 하지 마라. 안건드릴게. 됐지? 시발놈아."

아이들은 나를 건들지 않았다. 또한 말도 걸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결과인가. 이것이 내가 원했던 것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이제 무슨일이 있어도 다른 어른에게 이야기 하지 않기로 했다.

뭔가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쨌든 밥은 먹고 살았다. 그렇게 버텼다. 시간이 흐르자 일찐들이 조금씩 나에게 무언가를 시키기 시작했다. "또 교무실 갈거야? 토 꼰지르면 니 그냥 죽여버린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용서를 받았고,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일찐들의 꼬붕이 되면서 그나마 학교생활을 그런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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