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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흔적을 남겼다

엄마도 날 버렸는데, 난들 나를 못 버리겠느냐.

by 쿠선생 2021. 9. 26.

들어가며

어느 대형 쇼핑몰에서 남자 간호사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호사 되기 전에는 태움이다뭐다해서 그만두고 자살하고 이러는 게 엄청 안타까웠는데, 막상 돼보고 이런저런 일을 겪어 보니까 이제는 불쌍하지도 않아요. 병원에서 대충 어땠을지 그려지니까.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거기서 죽긴 왜 죽어요. 그렇게 태움 때문에 죽었다 그러면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뭐가 돼요? 솔직히 좀 이기적인 것 같아요." 마치 날보고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내 귓가에 들렸다. 그다음 남자간호사의 죽음은 바로 내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1. 엄마들은 신생아였던 너희들의 미소를 결코 잊지 못해.
  2. 억울한 할머니 앞에서 손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 엄마들은 신생아였던 너희들의 미소를 결코 잊지 못해.

"아빠하고 엄마하고 모두 너희를 사랑하겠지만, 아무래도 9개월을 뱃속에서 먼저 함께하고 교감했던 엄마가 아빠보다 더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더 보이는 게 현실인 것같애." 중학교 2학년 때 도덕선생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도덕선생을 보며 선생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50%가 넘는다는데, 혹시 여기 엄마 아빠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학생들에게 할 수가 있냐. 진짜 배려가 없다. 선생이라면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선생님 아니야?' 나는 도덕선생의 발언이 너무 싫었다. "엄마들은 아기가 뱃속에 나와서 딱 안겼을 때. 그리고 날 향해 웃어줄 때. 그 미소를 평생 잊을 수가 없어. 너희를 키우는 동안 너희가 아무리 엄마를 힘들게 하더라도, 엄마들은 신생아 때의 그 미소를 기억해서 힘을 낼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잘못했네.'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거야." 부모님의 이혼 후에 나는 한 번도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도덕선생의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고, 도덕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이 그따위 말을 하고 있다는 게 화가 났다. 나는 도덕 선생을 선생이라 인정할 수 없었다. 그저 자애로운 엄마인척을 하고 싶은 위선적인 여자로 보였다.

2. 억울한 할머니 앞에서 손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96년의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 부모의 이혼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
  • 부모는 자식에게 이해를 요구한다.
  • 그래서 자식은 그렇게 일찍 철이 든다.
  •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다.


96년의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

"그 정신 나간 것이 네 아빠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네 아빠가 어디 그럴 사람이니? 그 년이 마귀가 씌어서 의부증에 걸려가지고 네 아빠가 바람이 났다고 거짓말을 해서 아파트까지 뺏겼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세상에... "
아들의 이혼재판 결과를 듣고 할머니는 나를 부여잡으며 이야기했다. "그년이 내 생일에 고기를 사서 고깃국이라도 해준 거 봤니, 그년이 아주 미친년이야. 성경을 숨기질 않나 찢어버리지 않나. 마귀가 씌지 않았다면 할 수가 없지." 할머니가 그날처럼 슬프게 우는 모습을 그날 이후로 본 적이 없다. 할머니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누군가에겐 별 의미 없는 말이겠지만, 부모가 서로 갈라선 이 상황에서, 이보다 잔인한 말이 또 있을까. 양육권은 이미 아빠가 가져간 상태였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선택의 권한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친할머니와 엄마를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나이 7살에 일찍이 홍역을 치렀고, 엄마가 떠났다고 해서 내 인생에서 커다랗게 바뀐 것은 없었다. 그런대로 일상을 살아갔다. 그런대로 살아가 지더라.

부모의 이혼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

어느덧 이제 내 나이 서른둘.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이란 것이 내가 어렸을 때는 참 커다란 상처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내가 이혼한 것도 아니고 부모가 이혼한 것이 내 인생의 커다란 흠이 되진 못했다. 그냥 말 그대로 "so what?" 어쩌라고 그 자체였다.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해. 넌 어땠니?" 이제는 내 또래에,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사람들이 하나 둘 이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곤 한다. 어땠는지. 어느 부분이 상처였는지. 어떤 부분을 배려해야 되는지. '부모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아이에게 먼저 아픔을 겪어본 한 명의 어른으로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나에게 묻는다. "저는 할머니가 키워주셔서 큰 상관없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진짜 그냥 그랬다. 그렇게 그럭저럭 살아왔다.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더 잘해줬나 보다. 그래 우리 애도 지금 우리 엄마가 봐주고 있으니까. 부족한 부분 없이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

부모는 자식에게 이해를 요구한다.

이혼은 아이 보다도 이혼 당사자들에게 더 큰 혼란과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아이에게 이혼이라는 부모의 선택을 이해해주길 기대하고 또 요구한다.
"아빠가 미안해. 가정을 지키지 못해서." "괜찮아 아빠. 난 아빠도 엄마도 다 이해할 수 있어." "... 그래... 우리 아가 이런 말도 아빠한테 할 줄 알고.. 다 컸네.. 고마워."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실제 나도 그랬고 보통은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부모를 위로한다.

그래서 아이는 그렇게 일찍 철이 든다.

<왜 내가 있는데 이혼했어? 그것도 못 참아? 나를 생각했다면 끝까지 참았어야지. 가정 지켰어야지.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내 행복을 버린 거잖아 지금.> 아이는 부모에게 상처 주는 말도 하고 원망도 좀 하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받아줘야 되는 것이 부모이고 이런 아이의 철없는 말에도 아이를 품어야 되는 것이 부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전쟁을 치른 부모에게 아이의 이런 철없는 말을 받아주기엔 이미 지쳐있다. 그리고 아이도 이미 그것을 안다. "부모가 그랬는데도 참 잘 컸다. 일찍 철들었네." 부모가 이혼을 했으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부모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줄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나에게 부어주는 신적인 존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너무 빨리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이혼 아닐까.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다.

나는 내 아이가 일찍 철이 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부모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비극적인 아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7살의 나는 이혼한 아빠도 엄마도 그런 엄마를 욕하는 할머니도 다 이해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착한 아이로 보일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제일 중요했다. 엄마는 떠났고 할머니는 내 앞에서 엄마를 욕하며 울었고 나는 그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나를 할머니는 불쌍하고 착한 아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무것도 안 했지만 혼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오히려 착한 아이라는 칭찬을 받아 조금은 좋았다. 나는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도, 아빠도, 엄마도... 하지만 아니었다. 그저 다 이해하는 척이었다. 그건 아마도 그런 척이라도 안 하면 아빠에게까지 버림받지 않을까라는 불안에서 비롯된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우리 아이에게 나는 슈퍼맨이고 싶다. 인간적 어려움과 슬픔을 아이에게 터놓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나약했고, 무능력한 인간에 불과했다.

마무리

나는 모두를 이해했고 그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는 힘없는 내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무거웠다. 그래서 이 책임을 내려놓기 위해 병원 화장실로 향했다. 이 큰 병원 안에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유일한 곳은 바로 화장실 밖에 없었다. 화장실 칸막이 속에서 나는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막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뚫린 천장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마릴린 맨슨의 뷰티풀피플을 들으며 해방감을 느낀다. 내 귓가에 들리는 악마의 속삭임에 취하며 나는 잠시 자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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