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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흔적을 남겼다10

수원연화장은 너무나 추웠다. 할머니는 그렇게 자식들에게 효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떠났다. 요즘 장례식장은 일찍 문을 닫는다. 새벽 세시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나를 맞이해 주셨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요즘 장례 문화가 그렇더라고, 밤에는 문걸어잠그고 집에서 자고 다시 오고 그러는가봐." 코로나 때문에 문상객이 없어서 인지 나를 기다린 우리집 식장문만 열려있고 나머니 식장은 문이 닫혀있었다. 오는 길에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식장 내에 가족실에 아이들을 눕혔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그 모습. 내가 결혼전에 할머니와 같이 살았을 적에 찍었던 할머니가 있었다. '이제 진짜 할머니가 없구나.' 마음이 울컥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 하고 지난 몇 년간 얼굴한번 보기 힘든 손자였다. 그렇게 극진한 사랑을 쏟아부어가며 애지중지.. 2022. 1. 3.
할머니 상여가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강릉에서 강동 성심병원 장례식장까지 철부지 어린이는 상여가가 재밌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이야." 아홉살 안팎의 나는 할머니를 따라 할머니 삼촌 뻘되는 분의 장례식장을 따라갔고 거기서 상여가를 처음 접했다. 국악 한마당에서 들을 법한 노래가 재밌어 집에 와서도 종종 그 곡조를 생각하며 따라불렀다. 이내 할머니는 나에게 "그 노래 따라하지 마라."하면서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노래가 너무 재밌었기에, 숨어서 종종 부르곤 했다. 나에겐 일면식 없는 어느 노인의 죽음이었다.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는 게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살만큼 살다가 돌아가신 걸 울긴 왜운담.'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물이 나더라. 할머니가 93세에 돌아가셨다. 대한민국 평균 수명을 훌쩍 뛰어넘은 연세였고, 누군가는 일백번을 고쳐죽어도 채우지 못할 .. 2021. 12. 30.
인싸선생은 일진을 방치했고 나는 그래서 그들의 꼬붕이 되기로 했다. 너는 도대체 왜그러니? 다들 너랑 근무하기 싫다고 이야기해. 도대체 문제가 뭐야? 기댈 곳이 없었다. 부서장은 나를 싫어했다. 나를 문제아라고 여겼다. 나만 없으면 부서는 괜찮았다. 그래도 잘 돌아갔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신입들이 그래도 잘 버텨주었다. 이제 나만 자리를 잡으면 되는데 그게 안됐다. 있는 물건을 고쳐쓸 때 비용이 새로운 제품을 살 때의 비용과 별 차이가 없다면 당연히 새로운 제품을 사는 게 낫다. 이 바닥이 그랬다. 빌빌대는 나같은 간호사 하나를 시간을 들이며 기약없는 기다림에 지쳐갈 바에야, 어떤 인간이 들어올지 모르더라도 신입을 받는 것이 나을 것같다고 부서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너 혹시 불안장애 아니니? 괜찮으니까 한번 정신과 상담한번 받아봐. 요즘엔 그게 흠도 아니라더라. 그렇.. 2021. 12. 3.
원죄에 대하여 : 방구왕자의 똥싼바지 그리고 구타유발자 저는 죄인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 : 5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모든 이에게는 원죄가 생겼고, 물론 나에게도 원죄가 있었다. 아버지의 바람을 묵인한 죄, 친엄마와 아빠의 흉을 같이 본 죄, 욕하는 고모 앞에서 힘없는 할머니를 지켜주지 못한 죄, 고모와 싸우지 않고 도망친 죄, 새엄마에게 살갑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죄, 새로 생긴 동생을 챙기지 못한 죄 이 모든 것이 나의 죄였으며 나는 심판을 받아야 했다. 내가 동생이었어야 했다. 할머니 집에서 동생과 밥을 먹은 날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나와 다시 집을 가려는데 동생이 나에게 이야기 했다. "형 근데, 이제 나보고 야라고 하지 마. 기분 나쁘니까. 야라고 하면 나도 형이라고 .. 2021. 10. 31.